Source: www.springawakening.com
나의 브로드웨이 경험은 그다지 유쾌하게 시작하지 않았다.
9년 전, 만인이 찬사를 보내는 <캣츠>를 보고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완전 실망을 했었고,
$70 이 넘는 거금을 내고 (당시 환율은 1,500원 하던 시절) 중간 줄 오른쪽 가생이 좌석에 앉아 극 초반 총소리에 한 번 화들짝 놀란 것을 빼고는 줄기차게 꾸벅꾸벅 졸고 나와 돈 아깝다고 아깝다고 투덜 거렸더랬다 <시카고> 필시 그 나이에 그 모든 지저분한 것들을 이해하기가 무리였으리라. (철들고 본 영화와 올해 다시 본 뮤지컬은 나름 잘 봤거든. 그 사이 사회 때가 많이 묻은게지. -.-)
그럼에도 왜 또 뮤지컬을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어떤 경위에서 알게되었는지는 어렴풋이 옆방 대만 자매였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지만,
싼 표를 구하겠다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줄서느라 길거리에서 거지 행색으로 꼬박꼬박 졸아가며 간신히 손에 움켜쥔 $20 짜리 젤 앞 줄 한 가운데 좌석에 아무런 기대도 없이 앉았는데.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유독 나에게 찝찝한 기억만을 준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마침내, 나를 진정한 뮤지컬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지킬&하이드>
그 엄청난 에너지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그 다음 주에 그 거지 놀이 한 번 더 해주었더랬다.
그 후 <미스 사이공>에서는 그 초대형 스케일에 다시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아 이런 것이 브로드웨이라는 것이구나 느꼈었는데...
정확히 2주 전,
브로드웨이는 그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나에게 던져버렸다. <Spring Awakening>
원래는 지금 서울서 공연중인 <헤어스프레이>를 볼 예정이었으나, B군의 강력 추천으로 뭔 내용인지도 모르고 보게 되었는데, 허걱.
'이래서 다르구나' 느꼈다.
사실 내용은 지난 번에도 말했듯이 <죽은 시인의 사회>스럽다. 성장 소설, 아니 성장 뮤지컬이라고 해야겠다. 한 마디로 별거 없다. 참 뻔하다. 그리고 유치하기까지 하다. 이 나이에 저 나이 애들의 고민 이야기를 듣고/보고 있어야 하나 싶다. (그럼에도 목요일 저녁 관객들의 대다수가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라는 것)
나는 표 파는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운이 매우 좋아' stage seat을 구해 무대 위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보게 되었다. 완전 옆만 보는 거라 어떨까 했는데, 무대가 생각보다 많이 작고, 배우들이 옆을, 다시 말해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장면이 의외로 많아 별 문제는 없었다. 게다가 그냥 나와 같은 관객인 줄로만 알았던 대각선 앞자리에 앉은 미소년이, 우리 줄 저 끝에 앉은 귀여운 소녀가 글쎄 배우였던 것이다. 무대 조명도 환하게 켠 채로 한 무리의 아이들이 걸어 나와서는 각자 무대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데, 한 녀석이 내 옆에 앉아 순간 움찔했다. 게다가 공연 중간에는 애들이 우루루 뛰어나가 fence를 넘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 fence가 하필이면 내 바로 뒤여서 그 무리들이 나를 향해 돌진하는 순간, 진짜 무서웠다. 완전 작은 눈 똥그래지고 화들짝 놀라서 얼어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일반 좌석에 앉은 관객들은 봤을 거라는 거지 -.- 추측컨대 내 자리에 앉은 대부분의 관객들의 반응은 그러했을 터. 그들은 어쩌면 그것도 계산에 넣었을 거라는 생각에 약간 소름이 돋았다.
또 하나, 작은 눈 더 똥그래져 버린 일이 있었는데,
누군가는 저 위의 그림을 보고 (sound track CD 표지 사진) 야하다고 했으나, 실상 무대 위에서 저 남자아이는 바지를 내리고 그 뽀송뽀송한 하얀 엉덩이 속살을 드러내보였다! 게다가 하필이면 내 자리가 그의 엉덩이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리였으니... 헉. 정말 숨이 멎어 버렸다.
무대 위에서 남자 배우가 바지를 벗는다???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 그것도 배우가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을까 말까 보일 정도로 어린 아인데?
(다른 각도에서 본 사람들 역시 충격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었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본 것일까? 솔직히 궁금하긴 하다. 무대 위에서 어느 정도까지 표현을 해냈을지)
물론 이것들도 매우 놀랍고 충격적이었지만,
정말 이래서 브로드웨이가 늘 그자리에 머물러 있지않고 발전하는구나, 미래가 밝구나, 참 대단하구나 감탄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선생님과 학부모 역할의 두 배우를 제외한 나머지 십여 명의 학생들 역을 맡은 배우들이 모두 다 앳된 아이들이라는 것. 그 중엔 이 무대에서 데뷔한 사람도 있고, 대부분 그다지 큰 비중있는 역을 해 본 적이 없는, training을 갓 마친 신인 배우들이었다.
내 옆자리에 앉았던 고등학교도 졸업 안 한, 그러나 Christmas Carol 전국 투어 중이라던, 뉴욕에 만 24시간밖에 머물지 않는다던, 이 작품이 그의 첫 브로드웨이 감상작이라던 아이의 말을 빌면,
이 작품은 스무 살 이상의 배우들은 캐스팅 하지 않는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모두가 스무 살 이하는 아닌 것 같지만, 매우 어려보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이가 어떻건 간에, 여전히 이는 공연 제작자로서 매우 큰 모험일 것이다.
실력도 증명되지않은 신출내기 배우들을 모아다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올린다는 것은 누가 봐도 도박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 어찌보면, 오합지졸들로 토니상을 여덟개나 휩쓰는 쾌거를 이룩했다.
불혹이 넘은 최정원에게 이십 대 젊은 여자의 역할을 맡겨버리는 우리의 뮤지컬 시장에서 (<듀엣>, 2006), 이렇게 도전할 만한 배짱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싶다.
사실 말로는 우리나라 배우들의 풀을 넓히기 위해 노력을 하겠다 하지만, 진짜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다듬고 가르쳐서 훌륭한 배우로 키워낸다는 것. 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참 부러웠다.
그런면에서 내용이 얼마나 유치하던 간에,
우리나라에서도 누군가가 들여와서 어린 뮤지컬 배우들을 키워내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